소군 왕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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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왕서(王湑)는 고려 충렬왕이 태손 시절 김준이 최의의 여종 반주를 바쳐 낳은 아들이다. 제국대장공주의 총애를 받아 궁궐을 출입하며 왕소군으로 불렸다. 중랑장에 임명된 후 충렬왕의 뒤를 이어 황제의 숙위가 되려다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1276년에 승려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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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군 왕서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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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작위 | 공 |
휘 | 왕서 |
왕조 | 고려 왕조 |
아버지 | 충렬왕 왕거 |
어머니 | 궁인 반주 |
부모 | 충렬왕 왕거(부), 궁인 반주(모) |
친척 | 강양공 왕자(江陽公 Wang Ja), 충선왕, 정녕원비(靜寧院妃), 명순원비(明順院妃) |
출생지 | 고려 |
사망지 | 고려 |
별칭 | 작위는 강양군(江陽君) |
국적 | 고려 |
직업 | 왕족 종실 불교 승려 |
종교 | 불교 |
2. 생애
충렬왕이 태손(太孫)이 되었을 적에 김준이 최의의 여종인 반주(盤珠)를 바쳐서, 그 둘 사이에 낳은 자식이 바로 왕서(王湑)이다. 부왕(父王)의 정비(正妃)인 제국대장공주가 그를 아껴서 궁궐에 출입시키면서 왕소군(王小君)이라 불렀다. 생년월일은 전하지 않으나 그는 증조부 고종과 조부 원종이 모두 생존해 있을 때 태어났다.
이어 중랑장에 임명된 후, 충렬왕의 뒤를 이어 황제의 숙위가 되려고 강수형(康守衡)에게 뇌물을 주고 청탁하자, 강수형이 원나라 승상(丞相) 안동(安童)을 사칭하여, 왕서더러 툴루게(禿魯花)를 거느리고 원나라로 오라고 고려에 지시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충렬왕 2년(1276년)에 왕서가 교만하고 방자하다는 이유로 머리를 깎이고 승려가 되었다. 이후의 생애는 기록이 전하지 않는다.
2. 1. 출생과 성장
충렬왕이 태손 시절, 김준이 최의의 여종인 반주를 바쳐 그 둘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왕의 정비인 제국대장공주가 그를 아껴 궁궐에 출입시키면서 왕소군(王小君)이라 불렀다. 생년월일은 전하지 않으나, 증조부 고종과 조부 원종이 모두 살아있을 때 태어났다.2. 2. 중랑장 시절과 뇌물 사건
왕서(王湑)는 충렬왕이 태손(太孫) 시절, 김준이 최의의 여종 반주(盤珠)를 바쳐 낳은 아들이다. 제국대장공주가 그를 아껴 궁궐에 출입시키면서 왕소군(王小君)이라 불렀다. 생년월일은 전하지 않으나, 증조부 고려 고종과 조부 고려 원종이 모두 생존했을 때 태어났다.중랑장에 임명된 후, 고려 충렬왕의 뒤를 이어 황제의 숙위가 되려고 강수형(康守衡)에게 뇌물을 주고 청탁했다. 강수형은 원나라 승상(丞相) 안동(安童)을 사칭하여 왕서에게 툴루게(禿魯花)를 거느리고 원나라로 오라고 고려에 지시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충렬왕 2년(1276년)에 왕서는 교만하고 방자하다는 이유로 머리가 깎이고 승려가 되었다.
3. 가족 관계
부왕은 충렬왕(1236년~1308년, 재위:1274년~1298년, 1298년~1308년)이며, 모후는 반주(盤珠)로 최의(崔竩)의 종이었다. 이복형제로는 강양공(江陽公) 왕자(王滋), 충선왕, 정녕원비(靜寧院妃), 명순원비(明順院妃)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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